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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14:28

애니 <귀멸의 칼날> 극장판의 성공 배경엔 코로나가 있다? 애니 나눔

*저는 일본에 거주 중입니다.

귀멸이라는 현상

요즘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대세다.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그걸 느낄 정도다. 흥행 첫날부터 대박 조짐이 보이더니 그 <겨울왕국>이나 <너의 이름은> 같은 작품들의 흥행수익도 다 뛰어넘을 기세다. 이 코로나 시국에 이상할 리만 한 극장용 영화의 히트에 <귀멸> 자체의 매력에 관련된 분석들이 눈에 띈다. 물론 그런 작품 자체의 힘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코로나 때문에 더욱 히트했으리라 짐작한다.


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귀멸 현상의 상관관계

먼저 <귀멸의 칼날>이라는 작품 자체를 보자. 이 작품은 그 유명한 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총 23권으로 연재를 끝낸 작품이다(단행본 23권은 아직 미발매). TV 애니메이션은 2019년에 총 26화로 방영되었고, 원작의 부족한 부분까지 보완한 완벽한 완성도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주제가를 부른 LISA가 연말 홍백가합전에 이 곡으로 참가할 정도였다.

대단한 인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애니 정도였지 이렇게까지 큰 붐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애니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일반인에겐 그냥 그런 애니가 있구나 정도로 넘어갈 수준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집에서 틀어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따금 장 보러 가는 슈퍼에는 별 관련 없어 보이는 껌에까지 귀멸 캐릭터가 붙어 있었고, (<귀멸>을 보고 난 이후에 발견한 거긴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일절 상관없어 보이는 '유니클로' 택배 박스에 까지 <귀멸>의 그림이 박혀있었다.

이 정도쯤 되니 이게 뭔데 이러나 싶었는데, 때마침 가입한 넷플릭스에 <귀멸의 칼날>이 보였다.

최근 일본 넷플릭스를 이야기할 때면 다들 <사랑의 불시착>이나 <이태원 클라쓰> 같은 한류드라마 이야기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베스트 10중에 절반 이상의 작품이 한류드라마니까. 한류에 주목하는 건 일본 미디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간과 말아야 할 건 그 한류드라마 이외의 나머지 작품은 전부 일본 애니라는 점이다. <귀멸>은 적어도 6개월 이상 그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귀멸 캐릭터를 보다가 어떤 작품인가 싶어 한 번쯤은 클릭하게 된다.

더욱이 <귀멸>은 넷플릭스에서만 서비스되는 작품이 아니다. 아마존 프라임이나 훌루 등, 일본에서 정액제 동영상 서비스를 신청하는 이라면 누구나 <귀멸>을 볼 수 있다. <슬램덩크>같이 옛날 작품이 아닌 이상 이렇게 많은 플랫폼에서 동시에 서비스되는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코로나와 더불어 이러한 공격적인 서비스는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그리고 <귀멸>의 작품 자체도 꽤 넓은 타깃을 포함할 수 있다. 솔직히 처음 몇 화는 다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설정 때문에 그냥 전형적인 점프게 애니 정도로 보이긴 했다. 심지어 요즘 세상에 '성장형 주인공'이라니... 전형적인 걸 넘어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근데 또 전형적인 라는 건 오히려 시청자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하는 법이다. 묘한 감상이기는 하나 최근 작품인데도 옛날 작품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심지어 주연 성우는 젊은 사람들이지만, 단역 오니 역으로 나오는 몇몇 성우는 본좌급 성우(90년대에 주로 활동하던)가 섞여 있어 묘하게 향수를 자극했다. 또한 소재 면에서도 장난감 판매 광고 같은 아동용 작품이 아니면서도, 모에나 BL 같은 섹슈얼리티가 강조되는 소위 오타쿠 작품 또한 아니었다. 이러한 요소가 연령상으로 상당히 넓은 층을 커버하는 데 크게 일조하지 않았는가 한다. 작화나 연출 등, 작품 자체의 완성도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귀멸 극장판의 전략

그렇게 26화를 정신없이 보고 나니 두둥! 끝이 났는데 끝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은 새로운 사건을 좇아 열차를 탄다. 그리고 그 열차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번에 개봉한 극장용이었다.

통상 TV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극장용 작품이 나올 때는 별개의 에피소드를 창작해서 스페셜 판이나 스핀오프 같은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신 1기에서 끝난 이야기는 2기 시리즈에서 이어가고. 근데 <귀멸>은 극장용에 메인 스토리를 넣었다. TV 판 마지막 장면과 바로 이어지도록 말이다. 그러면서도 무한열차라는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는 영리함을 보여, 스페셜 판 같으면서도 스페셜은 아닌 영화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후지TV 계열 방송국에서는 TV 시리즈를 두 편으로 나눈 편집본(그냥 매화 반복되는 오프닝 엔딩 정도만 잘라내고 연속으로 틀었음)을 개봉 직전에 몰아서 방송한다. 마치 이거 보고 영화 보면 더 재미있을 거라는 듯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도 비슷하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비롯해 여러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기간 한정 등으로 기존 극장판을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음).

정작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아직 극장판을 못 봤는데, 사전 정보 없이도 무난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TV 판을 보고 싶으면 보라는 듯이 온갖 곳에 <귀멸>을 볼 수 있는 루트를 열어놓았다.


멀티플렉스를 지배한 귀멸

<귀멸> 개봉과 관련해 한 가지 특이한 경험이 있다. 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한 일본인 학생분이 지난주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극장에 갔는데, <귀멸>밖에 안보여서 결국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봤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에 난 많이 놀랐다. 한국에서라면 흔한 경험이다. 멀티플렉스영화관이 대세 영화에 편승해서 사실상 특정작품을 독점시켜버리는 이야기는 명절 때마다 나오는 불평에 다름아니다. 근데 일본은 그런 일이 잘 없다. 한국은 특정 대세 작품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뽕을 뽑고, 다음 작품에 넘어가는 구조라면, 일본 멀티플렉스는 대세 작품이 있어도 많은 스크린을 차지하게 하진 않는다. 대신 오~래 상영한다. 한 작품이 6개월 이상 가기도 한다. 이건 영화를 대하는 양국의 소비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귀멸>은 그 공식을 깼다. 예를 들어 나고야역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인 미들랜드 시네마의 1관과 2관 모두 <귀멸>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겨울왕국> 같은 작품 정도가 1관에선 더빙, 2관에선 자막 같은 형태로 걸려있는 정도였다. <귀멸>은 아예 같은 작품이 스크린 두 개 이상을 차지하는 기현상이 일어난 거다.


이건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코로나 때문이다. 예로든 미들랜드 시네마도 한 달 넘게 극장을 쉬었고, 운영해도 예전보다 절반 정도밖에 관객을 받을 수 없었다. 개봉 예정 영화도 다 미뤄지는 판에... <귀멸>이라는 구세주가 나타난 거다. 딱히 경쟁상대도 없겠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귀멸>에 몰아주기 한판.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않으면 극장 망하게 생겼다. 이례적인 화제가 되면서 더욱 관객이 몰려들고 있는 것 같다.


귀멸 이후는?

요는 코로나 시국에 의한 넷플릭스 등의 동영상 서비스의 흥행, 그리고 이를 노린 공격적인 마케팅, 적절한 개봉 타이밍과 극장의 사정이 겹쳐 이례적인 흥행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작품 자체도 좀 잔인한 걸 제외하면 누구나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취향 덜 타는 왕도형 작품이고...

90년대 중반에 심야에 재방송되면서 폭발적인 붐을 일으킨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겹쳐 보이는 부분도 있다. <에바>의 히트가 심야시간대 TV 애니와 제작위원회방식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으니까 말이다. <귀멸>도 넷플릭스 등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연관되어 일본 애니 산업의 새로운 길을 터 줄지 어떨지...  앞으로가 기대되는 상황...

암튼 <귀멸>의 흥행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 차원에서 적어보았다. 이번 주엔 함 보긴 해야할텐디….


덧글

  • rumic71 2020/10/26 16:31 # 답글

    우리키레가 가장 인상적이네요...
  • 젠카 2020/10/26 22:59 #

    동네 슈퍼라 왠만하면 매진 안되는데 매진되는 거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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