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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4 02:31

한국 오타쿠의 세대론에 대해서... 생각 나눔


위 이현석 님의 글이 뭔가 애매하게 끊긴 느낌이 들었다. 살짝(?) 개인적인 생각을 보태본다. 한국 오타쿠 세대론에 대해서...
현석 님이 써놓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한국의 1세대 오타쿠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본다. 연령대는 1970년을 전후로 태어난. 즉 소위 86세대보다 조금 어린 세대다. 여러모로 일본 오타쿠 1세대랑 겹친다. 참고로 일본 1세대 오타쿠는 1960년을 전후로 태어나 1980년대에 20대를 겪었다.
비슷한 점 첫번째는 그 바로 윗세대가 학생운동을 격하게 겪은 정치의 세대였다는 것이다. 일본의 1세대 오타쿠는 각자가 겪던 서클(이때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만을 전문으로하는 동아리는 드물고 SF소설 동아리 등으로 파편화된 시절) 선배들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면이 있었다. 요즘 식으로 하면 꼰대에 대한 저항의식이랄까. 뭔가 그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뉴미디어를 즐기는 세대였다. 그들은 정치의 시대와는 한발짝 떨어진 시점에서 대중문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세대다. 이는 한국의 상황과도 어느정도 일치한다. 참고로 지브리를 이끌던 미야자키 하야오나 스즈키 토시오는 당연히 이들보다 윗세대고, 정치적인 의식도 강했다.
두번째는 위와 이어지는 이야기이긴 한데 전후 풍요를 마음껏 누린 첫번째 세대라는 점이다. 이현석 님의 글에도 나오는 나카모리 아키오도 스스로 인싸인 척 한다. 그러나 사실 이 당시 인싸와 오타쿠가 큰 차이는 없었다. 이른바 "신인류"라는 담론에 속하는 세대다. 그들은 정치와 사상 등 거대 공유 담론에서 벗어나 각자가 자신의 개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한국의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대표적인 1970년대 전후생이 누구겠는가?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등요"라던 X세대다. 서태지, 신해철, 이현도도 다 여기에 들어간다. 그 봉준호도 이 세대에 속한다. 풍요롭게 외국 팝/영화 덕질을 했다. 우리도 저런 작품들을 만들어보자며 실제 만들어 본 세대다. 한국의 1세대 오타쿠들도 일본대중문화가 금지되어 있던 시절에도 적극적으로 일본의 것을 찾아 즐겼다. 우리도 이런 걸 만들어보자고 했다. 1990년대 아이큐 점프, 소년 챔프를 통해 데뷔했던 만화가들도 딱 이세대. 먹고살기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표현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대중예술을 하기 시작한 세대다.
셋째는 버블의 풍요를 마음껏 즐겼던 세대. 일본의 80년대와 한국의 90년대. 이건 딱히 설명이 필요없겠다. 한국도 IMF도지기 전까지는 쭉 성장했다. 취직걱정도 안하던 시절이었으니 뭐.
물론 완전 이 둘을 동일시 할 순 없다. 일본 오타쿠는 잡지와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세력을 넓혔다. 반면 한국은 그와 더불어 PC통신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90년대 초중반까지 PC통신은 소수의 사람들이 쓰던 문명의 이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 개설된 각종 만화 애니메이션 동호회가 활동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특히 한국에서 일본과 관련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PC통신을 통해 일부 본좌급 멤버들(일본의 정보를 직접 얻는 게 가능했던 특별한 분들)이 말하는 걸 진실처럼 믿고 따르던 시절이기도 했다. 한국 1세대 덕후들에게 있어서 일본은 지리적으론 가까웠지만 쉽게 다가가기는 힘든, 저 너머의 이데아 같은 세계였다. 지금보면 완전 저작권 침해로 철컹철컹했을 동영상 CD도 구워서 동호회 사람들끼리 구입해 보곤 했다. 여행 비자를 일일히 발급받아서 어렵사리 일본에 가면 LD를 한가득 사오기도 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 했다. 오프라인 상영회 모임에서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LD를 틀며 구경하던 풍경도 흔했다. 지금도 LD를 대량으로 구입했다가 공항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별짓을 다했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한편으로 막연한 반일감정이 극심했던 때라서 다들 복잡한 심정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소비했던 기억도 난다.
그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생들은 중고딩 시절에 PC통신에 기반한 커뮤니티 경험을 상당부분 공유한다. 다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점 일본 애니메이션을 구하기 쉬워졌다. 급기야 2000년 전후의 초고속망의 발달로 애니메이션을 거의 공짜로 다운받아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 디지털에 대한 위화감에서 오는 세대차이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느낌으로 겪었을 것 같다. 이전세대에 비해 너무 쉽게 작품을 접하기 시작한 세대다. 커뮤니티의 중심축이었던 PC통신은 점점 사라져 갔다. 이 당시 1세대 레전드들은 2004년경에 블로그 서비스인 이글루스로 대거 이동했다. 2세대들 역시 이글루스에 많았지만 어린 세대일 수록 네이버 등 좀 더 대중지향적인(?) 서비스로 분산되었다. 이는 곧 이전과 같은 커뮤니티 보단 각자가 각자의 취향대로 즐기는 문화로 더욱 확산된다. 기실 오타쿠만의 문제라기 보단 사회 전반의 미디어환경에 변화에 따른 거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모에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DC의 파편화된 놀이 문화가 오타쿠 커뮤니티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온다. 이글루스도 시간이 지나며 더 젊은 유저가 나타났다. 이들은 이전 세대들과는 다른 방식의 소통방식(주로 DC에서 유래한)을 막무가내로 요구하여 PC통신시절의 예의범절을 기억하던 초기 유저들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지금은 1세대 덕후들도 하나둘 결혼하거나 커뮤니티에 좀 더 가까운 블로그 서비스인 이글루스에서 떠나가 일부 흔적만 남아있다.
솔직히 1990년대 생은 잘 모르겠다. 이건 내가 겪은 게 아니라 조사를 해봐야.
그냥 생각나는대로 주저리 떠들어 봤다. 이상.

덧글

  • 1 2020/10/01 17:37 # 삭제 답글

    제가 92년생인데 대략 쿄애니가 뜨기 직전부터 덕질을 시작했습니다.

    다만 본격적인 온라인 활동은 부모님의 제약 때문에 늦어졌고(거실에 있는 컴퓨터), 학교에서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휴대기기에 다운받아서 보거나, 라노베나 굿즈류를 좀 사모으거나 하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제 새대에는 이미 싸이도 끝물이고 해서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점차 이 바닥을 잘 알아가기 전까진 네이버 파워블로그가 일본 마토메 블로그 역할을 했죠. 블로그 포스팅이 정리되는 오픈캐스트 기능도 잘 사용했습니다. http://opencast.naver.com/AM671

    이글루스 밸리는 접근성이 떨어져서 좀 천천히 알아갔던 거 같고요.

    제 새대엔 라이트노벨이 강세였고, 노벨게임은 퇴조를 시작했지만 애니화 같은 미디어믹스로 2차적 여진을 미치곤 했습니다. 나스 키노코, 우로부치 겐 등의 노벨게임 출신의 라이터들이 대세이기도 했고요.

    현재는 뭐 다들 트위터로 고여있거나, 디시의 안 좋은 영향을 받은 커뮤니티에 흩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 rumic71 2020/10/26 16:40 # 답글

    저는 오타쿠가 아니지만 오타쿠들과 종종 어울렸기 때문에 대충 분위기를 아는데,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중반 생 사이에 0.5세대 정도 차이가 진다는 느낌입니다. 60년대 후반, 즉 초대 오타쿠들이 왜곡된 정보를 많이도 퍼뜨려놔서 그거 바로잡느라고 애썼던 기억도 나네요.
  • rumic71 2020/10/26 16:59 #

    조금만 더 덧붙이면, 80년대 후반이 아니라 중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건담극장판, 마크로스, 나우시카 등이 일본보다 살짝 늦게 한국에 알려질 시기였죠.
  • rumic71 2020/10/26 17:29 #

    잊고 있다가 이 글들 보면서 기억이 떠올랐는데, 당시 1.5세대들 사이에서는 오타쿠란 표현을 꽤 엄격히 대했습니다. 누가 스스로 오타쿠입네 하고 나대면 '아는 것도 없는 일뽕'취급을 했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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