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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8 18:44

한국영화와 일본영화, 갈림길의 시작점 영화 나눔

현재 한국(상업) 영화와 일본(상업) 영화의 위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나 90년대엔 할리우드의 대자본 앞에서 사상 최악으로 망해가던 건 똑같았다. 극장에서 한국 영화 ‘따위’를 보지 않았던 것처럼, 일본 역시 연인들의 데이트용 영화로서 일본 영화는 어딘가 다사이(ダサい:촌스럽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두 나라의 영화는 화려하게 부활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 일본 영화 역시 그 나름대로 부활한 거다. 적어도 일본 극장가에 가보면 지금도 수많은 일본제 영화들이 개봉되고 있음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영화는 전성기 시절인 1950년대 중후반엔 자국 영화 점유율 78%를 찍었던 적이 있으나, 1990년대 후반엔 30%정도로 내려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 서서히 회복하여 현재는 5,60%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2000년대 이후의 자국영화 비율은 50%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 기폭제가 된 영화가 하나씩 있다. 한국의 경우엔 <쉬리>(1999), 일본은 <춤추는 대수사선 The movie>(1998)가 그것에 해당한다. 이 두 영화를 기점으로 일어난 일을 돌이켜보면 오늘날 두 나라의 영화산업의 흐름과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쉬리>는 <접속>(1997) 즈음부터 시작된 ‘세련된’ 한국 영화 제작의 흐름에 놓여 있다. 그 사이엔 <편지>(1997)나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같은 멜로영화가 유행했다. 비록 흑역사로 끝났지만, 인기 소설 원작 <퇴마록>(1998)을 영화화하면서 블록버스터를 시도했던 것도 빼놓을 순 없다.

<쉬리>는 당대 유행하던 할리우드식 액션 영화의 전형을 가져온다. 일단 폭탄이 팡팡 터진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첨단 기술을 도입한 특수무기가 나온다. 이를 막는 특수 비밀 요원이 등장하며 작중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왠지 모르게 근 미래적인 3D 그래픽이 나온다. 롱테이크를 지양한 긴박한 카메라 워킹(좀 어지러웠지만)도 그간 한국 영화에선 보기 힘들었던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면에선 할리우드와 차별화를 뒀다. 그중 하나는 남북분단이라는 한국의 역사적인 상황이고, 또 하나는 사랑에 지고지순 하는 한국식의 멜로감성이 양념으로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익숙한 할리우드식 장치에 한국적인 배경과 신파적인 감성, 비극적인 엔딩이라는 요소는 사실 지금까지 한국상업 영화가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장치들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초중반의 코미디적인 요소만 추가했다면 완벽한 ‘한국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김성민 교수는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POP’에 칼군무, 한국어, 패션 같은 한국적인 요소(‘K’)가 추가되어 K-POP이 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쉬리>로부터 <부산행>(2016)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영화 역시 보편적인 할리우드식 영화에 한국적인 정서가 추가된 K-MOVIE의 흐름이 이어져 왔다.

그에 반해 <춤추는 대수사선>은 어떠한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작품은 본래 TV 드라마가 원작이며, 드라마의 인기를 스크린에 이어가고자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드라마 원작의 영화가 히트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디어믹스 기획의 일환으로 드라마를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단, <춤추는대수사선>의 다른 점은 기존의 드라마 원작 영화가 ‘드라마는 드라마고 영화는 영화다’라는 전제하에 감독 이하 제작진이 대부분 영화계 출신 스텝으로 채워졌던 것에 반해, <춤추는…>은 드라마의 제작진이 그대로 영화에 투입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드라마’를 ‘영화’라는 매체로 바꿔서 즐기는 게 아닌, ‘드라마’의 느낌 그대로를 ‘극장’에서 느끼게 해주겠다는 의도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춤추는 대수사선>은 스케일이 조금 커지긴 했으나, 영화라기보단 드라마의 스페셜 방송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서 그대로 극장에 걸렸다. 이 방식은 일본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히트로 이어졌다.

‘드라마’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키네마 준보> 전 편집장인 가케오 요시오의 회고에 따르면, <춤추는 대수사선>드라마의 시청률은 그렇게까진 높진 않았다고 한다. 대신 열성적인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 극장 분위기가 마치 팬클럽 같았다고. 일본 영화관에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일본인들은 웃긴 장면이 나와도 억지로 참으며 조용히 본다. 그런데 <춤추는 대수사선>때는 이와 달리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가케오는 당시 관객들이 이 영화에 ‘자신들이 기른 영화’라는 각별한 애착이 있는 것 같았다고 서술했다. 즉 <춤추는 대수사선>은 기존의 팬층을 영화로 끌고 옴으로써 성공한 영화였다. 이것은 이른바 미디어믹스 혹은 크로스미디어 적인 마케팅 전략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하지만 미디어믹스에는 확고한 팬층을 끌고 올 수 있지만, 팬이 아닌 사람에겐 작품에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고, 어려워 보이는 양면적 측면이 있다. 이 두 영화는 한국과 일본에 각각 정식으로 수입되었는데, 그 반응이 흥미롭다. <쉬리>는 일본에서 흥행 수입 18억5천만 엔을 벌어들여 2000년 흥행 순위 20위를 기록했다. 비슷한 성적으로 19위를 기록한 작품이 <X-MEN>(2000)이었는데, 당시 일본에 한류라는 게 아예 없었던 시절임을 고려하면 꽤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이어지는 초기 한류 붐의 기반을 닦았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다. 반면 일본 대중문화개방에 힘입어 한국에도 개봉한 <춤추는 대수사선>은 흥행 면에서 <러브레터>(1995)가 크게 흥행(서울 기준 645,615명 동원, 1999년 흥행 순위 11위)한 이후임에도 그리 큰 재미를 보지 못하였다(서울 기준 300,767명 동원, 2000년 흥행 순위 22위).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춤추는...>만 놓고 보면, 한국인 관객들은 일본의 관객과는 달리 사전정보가 전혀 없었다. 당연히 극 초반부에 아오시마가 왜 무로이에게 화를 내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오시마와 무로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이미 TV 드라마를 통해 다 끝났기 때문이다. 또한 <춤추는 대수사선> 곳곳에 숨어있는 잔재미(개구리 상표 등) 역시 한국 일반 관객들이 알 도리가 없었다. 너무나 드라마 같은 연출 때문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관객도 있었다. 즉 한국 관객에게 <춤추는 대수사선>은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러브레터>가 히트한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적어도 <러브레터>가 완벽한 영화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독립된 작품이라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쉬리>는 새로운 젊은 감독과 스텝이 참가했지만 어쨌든, 영화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시스템이 히트를 해서 이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이어지지만, <춤추는대수사선>은 원작의 팬덤을 활용한 영화제작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는 투자와 제작시스템의 차이로 구체화하는데 그것에 관해서는 다음에 언젠가…


참조
김성민(2018)『케이팝의 작은 역사 - 신감각의 미디어』글항아리
日本映画専門チャンネル(2010)『「踊る大捜査線」は日本映画の何を変えたのか』幻冬舎 

덧글

  • rumic71 2020/10/27 00:19 # 답글

    결국 '대수사선'은 건담 극장판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 셈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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