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자체는 아주 좋았다. 정말 최고였다. 락/메탈계열 공연에서 이정도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 경우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짝 소외받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내가 잼프로의 노래들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팬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번 공연은 결성 10주년을 기념하는 투어의 일환이기 때문에 중반에 10주년의 역사를 담은 영상을 틀어주었다. 이 공연에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올 정도이면 상당한 수준의 팬일 것이며 내가 자리한 위치인 VVIP석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10년간의 여정을 담은 영상 속에서 각 년도의 대표적인 곡들이 나오는 데 모두들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분명 멋있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들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었다. 드림씨어터 20주년 기념 투어 였던 SCORE 때가 생각났다. 화면에 발매 당시 연도와 앨범 재킷이 뜨면서 대표곡들을 그들이 하나하나 연주하던 것을 바라보던 때의 두근두근했던 감정을 이 때 모인 관객들은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만큼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왔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일체감은 쉽게 체득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VVIP석의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은 미안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따라불렀다. 그 중에는 정말 미친듯이 빠져들어 팬 혹은 거의 덕후(한가지에 푹빠진다는 의미에서)수준으로 좋아한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중고등학교 때 즐겨 들었던 노래들이 많다. 또 한 가수의 팬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가수가 가진 고유명, 즉 각 가수나 팀이 가진 네러티브가 내 삶의 특정부분과 공명이 일어날 때에야 팬심이 생겼다.
중학교 때 좋아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패닉같은 경우 질풍노도의 시절을 겪으며 형성된 사회에 대한 반항기가 그들의 음악과 공명했다. 서태지와 패닉(특히 2집과 3집!)은 음악이전에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러한 사건 하나하나가 내게는 하나의 메시지처럼 받아들여졌고, 아직 어렸던 나는 거의 맹목적으로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광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CCM프로그래시브 메탈 밴드 예레미(JEREMY)는 당시 내가 회심을 했다는 사실과, 그 이전부터 고민하던 대중문화와 기독교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공명했다. 물론 예레미 자체의 음악이 정말 극강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했던 점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그들의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논란과 토론과 논쟁이 그들에 대한 애정을 더욱 짙게 만들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드림씨어터도 팬이되었지만 이것은 예레미와 비슷한 음악을 한다는 이유에서 시작했다. 또 당시에 내가 악기를 시작한 것과도 연관된다. 전역 후에 푹 빠졌던 일본의 CCM가수 MIGIWA는 사실상 내가 한국의 유일한 팬인데(...) 우울증과 내적치유에 관심이 많던 당시의 상황과(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우울증에 걸려버렸던 당시 상황과) 히키코모리 출신 가수가 부르는 우울하지만 희망적인 그녀의 노래가 공명했다. 그녀의 노래는 상심한 마음을 실제적으로 위로해주었다. 정말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있다면 그 배경에는 이와 같이 개인의 삶과의 공명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는 이보다 훨씬 많지만 한 때 완전히 내 삶을 지배했다시피 했던 가수들은 이정도로 손에 꼽을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노래방에서 애니송도 많이 부르지만, 나는 특별히 애니송 가수를 좋아한 적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송은 대부분 실제 작품을 통해 좋아진 것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특별히 가수에게 애정을 가진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딱히 <슈퍼로봇대전>도 하지 않았던 내게 있어서 잼프로젝트는 이들과 나 개인간의 어떤 공명점을 찾지 못했다. 비록 가사는 외우지 못했지만 이번 공연을 위해서 잼프로의 노래를 따로 구해서 듣고 예습하여 갔었다. 공연장에서 내가 완전히 몰랐던 노래는 네곡정도. 어쩌면 잼프로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보다도 내가 아는 곡이 더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앨범의 곡이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만큼 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는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노래를 모른다고 해도 가수와 음악과 관객과의 일체감이 모두를 극복하게 한다. 작년 EBS 스페이스 공감의 예레미 공연은 나혼자만 팬인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번에는 나 혼자만 팬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가 참 묘하게 대조되긴 했었다(...)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1년 후에 다시 그들의 공연을 간다면 또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간단한 감상 메모들
- 약 900명정도가 공연장을 찾았다고 한다. 이름값에 비하면 조금 아쉬운 숫자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락/메탈 관련 공연이 매진된 사례는 거의 한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거 생각하면 이정도는 준수하다(...) 예레미(어쩔 수 없이 자꾸 튀어나오는 예레미;)는 무려 공식 라이브 앨범과 DVD가 나오는 공연에서 조차 이거의 반의반도 안되는 관객이 왔다. 나름 일본과 대만에도 진출한 밴드인데(;;;) 원정팬들은 정말 대단!
- 잼프로젝트 멤버들에 관한 부분은 생략. 대략적인 네타들은 다른 블로그가면 다 소개되어 있으니 굳이 내가 여기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 내가 놀랐던 부분은 뒤의 밴드들. SUARA 내한 때 밴드를 한국인 세션을 사용한 것과는 다르게 잼프로급 유닛은 밴드도 끌고 다닌다. 이들은 그야말로 원작의 완변한 재현에 충실했다. 기타 솔로가 나와도 절대 튀지 않는! 정말 세션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이 정도로 한치의 실수도 없이 원사운드를 재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 말이다.
유일하게 약간이나마 다룰 줄 아는 악기가 드럼이어서 드럼에 가장 관심이 갔다. 마지막에 악기별로 솔로하는데 이런 거 보면 환장하는 젠카는 드럼 솔로 때 미쳐 날뛰며 괴성을 질렀다(...) 정말 다른 악기들은 누가 솔로를 하면 다 쉬는 데 드럼은 쉴 수 없다. 계속 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힘내라 드럼(ㅠㅠ) 이름은 모르겠다만;;
- 어쿠스틱 타임 때 부른 한국애니주제가. 설마 내가 이 두 귀로 오쿠이 마사미가 부르는 요리보고 송을 들을줄이야! 정말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게 느껴졌다. 멤버들의 한국 사랑도 그냥 하는 립서비스가 아닌 것을 알겠더라. 공연의 3분의 1이상은 한국어로 진행했는데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나저나 '찾아라 드래곤볼~'은 정말 의외의 선곡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라는데 누가 선곡을 해주었는지 정말 천재가 아닌가 싶다. 거 누군지 참(...(...))
- 전체적으로 열정이 가득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아직도 팔이 아프다. 다음에 좀 더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서 가야겠다. 아마 느낌도 다르겠지. 애정을 키우기에는 시간도 너무 부족했다. 아무튼 잼프로젝트! 20년 30년...은 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그 열정을 계속 이어가길!
- 그리고 내가 원래부터 팬이었던 가수들의 공연도 적극적으로 보러가야겠다. 근데 드림씨어터는 내가 돈있을 때는 내한을 안온다(ㅠㅠ) 2008년 내한 때 'TAKE THE TIME' 떼창 부르는 거 보고나니 미칠 것 같다(ㅠㅠ)





덧글
추천해줘서 고마워! 비록 22세 이하는 모르는 노래라지만(....)
나도 밴드들의 연주 실력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지식이 있었음 좋겠다. 이건 완전 막귀야...
투니버스를 애청하는 사람이라면 22세 이하라도 알고 있었음(예: 19세 내 동생;;;) 흠 그렇다하더라도 흔한 노래는 아닐진대 그래도 많이들 알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나도 막귀임; 어차피 드럼이외에는 아주 쬐끔씩밖에 몰라서;; 그냥 악기 하나정도 배워보고 합주 한번 해보면 어느정도는 그냥 감이 올거야^^;
그래도 한국팬들이 숫자는 적어도 노는 건 진짜 잘 하거든; 자주 밴드들이 안와서 그런지 한번 할 때마다 죽자고 뛰고 떼창부르고 하니까. 잼프로의 한국팬들 감상은 어떤지 궁금?
곰쨩의 기타는 정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