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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14:00

아마도 한국최초의 라이트노벨 연구서? (아아; 선수를 빼앗겼네요;;) 독서 나눔

저는 나름대로 라이트 노벨을 비롯한 일본의 오타쿠계 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 연구라는게, 그냥 일반 소개 서적을 내거나, 동인계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닌 이상, 자기가 하려는 해당 학문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 필수입니다. 제가 오덕연구를 하는 것도 오덕들이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덕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평소에 쓰는 언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학문하는데가 어디나 그렇듯이 그 세계내의 권위적인 부분이 많고, 각 영역마다 폐쇄적인 면도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대로 취급받지 못했던 서브컬쳐를 들고 나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한편으로 학문세계 내부에서도 지금까지 연구대상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서브컬쳐나 아이돌 가수 같은 상업적인 대중문화를 창조적으로 분석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문화사회학계에서 상당히 유명하신 최샛별 이화여대 교수가 <만화! 문화사회학적 읽기>라는 책을 내신 것은 꽤 뜻깊은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최샛별 교수는 무려 예일대학에서 사회학 석박사를 하신 분이고, 일본어까지 잘하셔서 일본사회를 분석한 책들도 번역하셨죠. 그러신 분이 다른 것도 아닌 '만화'를 진지한 분석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보수적인 한국 학계를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아즈마 히로키 같은 사람이 한국에도 나올 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또한 공저자인 최흡은 최샛별 교수의 남동생으로 기자출신입니다. 즉 만화팬인 남동생과 학자인 누님이 합작으로 연구를 했다는 거지요. 이러한 조합도 꽤 흥미롭습니다. 기존의 만화평론가라고 하던 분들(예를 들면 박인하씨같은)이 아무래도 만화 쪽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담론이라는 한계가 있었는데, 최샛별 교수같은 외부인이 전문적 학문적 도구를 가지고 만화와 사회를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클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올 여름에 이 책을 가지고 제가 속한 연구집단인 '카이로스'에서 세미나를 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책 읽고 토론하자는 거죠. 그래서 사긴 샀는데, 쭉 훑어보다가 라이트 노벨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흠칫; 하고 읽어봤더니 <스즈미야 하루히>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여기서 사용된 인비지블 잉크(보이지 않는 잉크)라는 개념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잉크라는 것은 볼 사람에게만 보이는 잉크라는 뜻으로, 라이트 노벨의 전형성과 이어지는 개념입니다.

문제는 제가 이 주제를 가지고 지난 학회 때 발표를 했는데! 했는데! 했는데! 저보다 먼저 이걸 짚으신 분이 있다니 뭔가 반가우면서도 분한 느낌이 드네요; 물론 저는 다른 개념으로 이를 설명하려고 했지만요. 저 같은 경우는 에드워드 홀의 맥락(context)개념을 통해서 라이트 노벨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고유한 특징(고유명)을 설명하려 했었습니다. 즉 일러스트의 효과나 초반에 나오는 컬러페이지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 같은 걸 분석하는 것이지요. 그 결과 라이트 노벨은 일반 소설과는 다르게 고도의 맥락도(하이 콘텍스트)적인 매체가 되고, 이것이 매체 자체의 폐쇄성으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걸 최샛별 교수는 인비지블 잉크라는 표현을 써서 상당히 세련되게 표현했더군요.

이것은 오타쿠가 가진 문화/상징 자본으로 이어집니다. 네! 네! 바로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이론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바로 엊그저께 제가 썼던 그 관점을 이 분이 사용하고 있는겁니다. 우웅~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이 역시 있었어!! 대신 아비투스 이야기는 나오지 않네요. '오타쿠'라는 장 안에서의 권력다툼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분이 확실하게 짚어주셨네요. 쉽게 생각해서 오타쿠계 작품안에 있는 수많은 패러디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즉 상징자본, 문화자본같은 개념이 서양에서 나왔을 때는 주로 지식층에서 나옵니다. 즉 '내가 너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라는 것이 남과 나의 계급을 나누는 자본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이걸 '구분짓기'라고 합니다. 근데 오타쿠계에서는 이 모든 지식이 얼마나 많은 아니메나 망가를 알고 있느냐로 연결됩니다. '덕력'이라는 게 이런 부분이죠. 그걸 상징자본과 연결지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이 분이 그런 말 하니까 꽤 그럴 듯 하게 들리는 거예요.

이외에도 오타쿠 문화가 한국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도 꽤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네요. 암튼 인용할 부분이 많은 책이 될 듯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읽어봐야지요^^;

아, 참고로 제가 있는 과 대학원 선배님이 쓰신 책 중에 <기호학적 만화론>이란 책도 있습니다. 이것도 흥미롭지요!

덧글

  • 2010/06/01 15: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젠카 2010/06/01 15:57 #

    과연 그렇군요! 아직 살짝 훑어보았을 뿐이지만, 다루는 주제들이 신선할 뿐 아니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점이 신기했습니다.
  • 미루나무 2010/06/01 17:23 # 답글

    호오 ~ 한번 꼭 구입해 봐야겠네요^^
    작가 지망생에게도 도움이 될까요?
  • 젠카 2010/06/01 17:56 #

    글쎄요; 작가지망생에게는 도움이 될지 안될지;; 받아들이기 나름일 것 같아요^^;
  • AHYUNN 2010/06/02 04:48 # 답글


    학문이란 정말로 보람차 보입니다.

    저도 학교로 돌아가고프죠.
  • 젠카 2010/06/02 12:42 #

    본인이 좋아하고 경제적 여력만 된다면야 참 좋죠^^;
  • 후카츠노히 2011/10/07 03:05 # 답글

    비록 오타쿠 내 집단 간 관계에 중심을 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 있어서 오타쿠가 사회와 갖는 관계를 부르디외나 푸코로 한 번 해석해보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시도하신 분이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놀랍네요.

    내일 학교 도서권에서 찾아봐야겠습니다.
  • 젠카 2011/10/07 09:08 #

    시도...라기보다는 이것도 일종의 관점제시정도라서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는 거 자체가 현재로선 신기한 부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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