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라이트 노벨을 다루는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책만큼 라이트 노벨의 본질적인 특징을 파해친 책은 보지 못했다. 저자인 오쓰카 에이지는 만화잡지 편집자도 했고, 스스로 소설가이면서 만화 원작자이기도 하다. 또한 민속학을 전공하고, 대학 등에 출강하기도 하며, 순문학 비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색적 경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80년대 초반에는 <만화 부릿코>라는 잡지에서 편집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 잡지는 다름아닌 나카모리 아키오가 ‘오타쿠’라는 용어를 아니메에 푹 빠진 사람으로 처음 정의내린 글이 실린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원래 <더 스니커즈>지에 연재했던 글로 지금의 ‘라이트 노벨’의 작법서같은 책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라이트 노벨’이란 용어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본서에서는 ‘캐릭터 소설’ 혹은 ‘스니커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겉으로는 캐릭터 소설 작법서 흉내를 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 책은 캐릭터 소설 문학론(論)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각종 소설 분야에 다양한 경험을 소유하고 있는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순수문학, 만화나 장르소설을 종횡무진으로 왔다갔다 하며 자신만의 캐릭터 소설론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일본 고유의 소설 장르인 사소설(私小說: 작가 자신이 반영된 ‘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 형식)과 캐릭터 소설을 비교한다. 사소설이 실재하는 작가가 반영된 리얼리티 소설이라면 추리소설이나 SF소설같은 장르 소설은 가상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 캐릭터 소설이라는 것이다. 즉, 라이트 노벨은 사소설과는 별개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 오쓰카는 배신(?)을 때리고 이 두가지의 소설 형식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는 사소설의 대표적 작품인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을 인용하며, 결국 현실 속의 ‘나’가 반영되었다 하더라도 소설 속 ‘나’는 진짜 ‘나’와는 다른 종류의 가상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즉, 캐릭터 소설-라이트 노벨) 모두 가상의 세계에서 펼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이며, 캐릭터 소설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문학’이 되는 걸 두려워 말라고 한다. 어떤 작가는 캐릭터 소설을 쓰다가 순수문학으로 이직하면 별안간 이름을 바꾸거나 과거 이력을 숨기는데 이 점도 강하게 비판한다.
이 책은 이 뿐 아니라, 자신의 만화는 ‘기호’라 말했던 데즈카 오사무의 예를 들면서 헐리웃 영화까지 언급하며 작품 자체내의 ‘리얼리티’ 혹은 ‘리얼리즘’이야기를 책 전체를 통해 다룬다. 폭력적인 만화를 보면 현실과 허구를 구분 못하여 폭력적인 아이가 된다는 신화를 비판하며 이라크 전쟁을 하는 미국과 일본이 오히려 현실과 허구를 구분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반문한다. 이라크 전쟁 시나리오가 그야말로 헐리우드 영화의 구성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오쓰카의 정치적 입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다.
이 책은 <더 스니커즈>에서 연재되었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출판사를 바꿔서 단행본이 나왔다. 책 전체를 통해 주구장창 다루는 ‘리얼리즘’문제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으로 유명한 아즈마 히로키에게 자극을 주어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이라는 책의 모토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의 대담을 모아 <오타쿠- 리얼의 행방>이라는 책도 나왔으니 일본어 되시는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라.
도서 정보
캐릭터 소설 쓰는 법(キャラクター小説の作り方)
오쓰카 에이지 지음, 김성민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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