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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지대를 헤매다
(1983년8월호)
여, 모두들, 오타쿠 하고 있어? “오타쿠”라는 말도 이제 충분히 정착해서 슬슬 따옴표도 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 그래서 이제부터는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오타쿠라 하면 2인칭을 뜻하는 인칭대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는 거지. ‘오타쿠스럽다’라든가 ‘오타쿠하다’같은 형용사와 동사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야. 뭐, 그 정도는 적당히 사용하세요. 오타쿠라는 말을 발명했던 당시야 어느 누구도 그 뜻을 모르잖아. 그래서 그걸 핑계로 충분히 놀았던 거지.
신주쿠 3쵸메에 프리스페이스라는 만화 동인지 따위를 파는 서점이 있는데, 그 곳이 오타쿠들의 집합소같은 곳이 되어있지. 걸프랜드인 고2 유미를 거기에 데리고 갔더니 “봐봐, 여기도 오타쿠, 저기도 오타쿠, 앗! 저녀석은 초오타쿠네”라고 오타쿠를 호되게 오타쿠 취급을 해버렸어. 걔네들도 오타쿠가 뭔 뜻인지를 모르니 멍하니 메스꺼운 눈을 하고 있는 거야. 유미녀석은 이미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느라 “꺄하하, 제발 그만 좀 웃겨, 아키오”라며 얼굴이 벌개져 있었어.
프리스페이스 일부는 문지방 같은 것으로 구별되어서, 간이 찻집을 하고 있었는데, 문지방 안쪽에서 괴상한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거야. 직접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어둡고 밝다고 해야할까, 민달팽이나 거머리에게 울음소리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 그런 소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한 웃음소리였다고. 뭔가싶어 문지방 너머를 들여다본 유미 녀석은 “힉!”라며 소리를 지르며 조건반사적으로 삐끗하고 뒤로 나자빠져 덜덜 떨었어. 왜 그런가 해서 나도 들여다 보고선 알았지. 거긴말야, 오타쿠 중의 오타쿠같은 애들이 7, 8명이나 우글거리고 있었던 거야. 애니메이션 잡지라든지 포스터라든지를 테이블에 펼쳐놓고선, 그걸 소재로 자신들밖에는 통하지 않는 농담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칭찬하고 있었어. 그 무시무시한 광경은 마치 지옥의 제사라고 할까, 전일본 오타쿠 선수권 관동지역대회 결승이라고 할까, 나부터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지. 유미녀석도 소름이 돋는다는 둥, 두드러기가 난다는 둥 하며 몸을 떠는데, 대체 어디서 솟아난거야 저 사람들은, 어쩜 그리도 화가 나는지.
좀 있다가 프리스페이스 관계자이면서 오타쿠를 자세히 알고 있는 녀석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걔네들은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거의 매일 모여 저기서 우글우글 거리고 있다는 거야. 꽤 오랫동안 있는 것 같으니 2시간이상 양해는 기본인 것 같다. 그녀석도 처음에는 무슨 이런 기분나쁜 녀석들이 있냐고 여겼던 것 같지만, 최근에는 “녀석들도 이 곳 외에는 달리 있을 곳이 없는거요. 게다가 한사람씩 떼놓고 보면 조용하고 착한 애들이고.”라며 오타쿠에게 동정을 표하기 시작했다고. 그럼 그 신기하게만 생각했던 녀석들은 매일 학교가 끝나면 왁자지껄대며 모이곤 하지만, 프리스페이스가 생기기 전에는 대체 어디서 서식했던 것일까. 그녀석에 따르면 “아, 녀석들은 그전에는 한사람씩 분단되어 있었어요.”라고 하더라.
유미를 달래며 프리스페이스를 도망치듯이 빠져나와, 신주쿠교엔에 갔어. 교엔 잔디밭에서 유미와 서로 얼싸안으며 아까전의 오타쿠 녀석들을 소재로 웃거나 했지. 하지만 점심이 지난 신주쿠 3쵸메는 참 이상한 곳이야. 교엔에서 는실난실하는 커플, 프리스페이스를 노리는 사파리 재킷에 시커먼 눈을 한 오타쿠나, 첫타임에 근무하는 남창밖엔 안 걸어다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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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연구 (1) 거리에는 “오타쿠”가 가득 - 나카모리 아키오
http://taeppo.egloos.com/4278039
"오타쿠" 연구 (2) “오타쿠”도 보통 사람들처럼 사랑을 한다? - 나카모리 아키오
덧글
다른 모든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젠카님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