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무라 진(柴村仁)의 <우리 집의 여우신령님(我が家のお稲荷さま。,2004~)>은 여우 요괴가 등장하는 라이트 노벨이다. 한국에서는 학산문화사의 익스트림 문고에서 발행하였다. 어머니를 여윈 타카가미가의 형제 노보루와 토오루는 요괴라는 걸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랐다. 그런 그들을 미즈치 집안의 큰할머님이 요괴가 동생인 토오루를 노리고 있다고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다음이 해당 부분이다.
“…요괴.” 노보루는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요괴…요괴…요괴….
설마 그럴 리가 싶어서 열심히 생각해 봤지만 노보루의 머리에는 좀처럼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중략)
“요괴가, 토오루의 목숨을 노리고 있나 봐.”
역시 잘못 들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무리하게 다른 단어를 찾는 것보다 가장 그럴 듯한 건 발음 그대로 생각해 ‘요괴가 토오루의 목숨을’…이라고 받아들이는 건가. 어쨌든 지금은 ‘요괴=妖怪’로 치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장면은 현대사회에서 요괴(妖怪)는 완전히 별세계의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것만 보면 별 문제는 없다. 그런데 원문을 보자.
「……ヨーカイ」昇はおうむ返しに呟いた。
熔解……妖怪……洋灰……
その響きに当てはまる漢字が数個、脳裏をかすめるが、昇にはどれが当てはまるのか、いまいち判然としない。
(中略)
「ヨーカイが、透ちゃんの命を狙ってるってことらしい。」
『洋灰が透の命を』……違う気がする。『熔解を透の命を』……これも不適当に思われる。一番しっこり来るのは『妖怪が透の命を』……これか。とりあえず今は『ヨーカイ=妖怪』ってことにして、話を進める。
일본어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을 첨부하면, ‘요우카이(ようかい: ‘요괴’의 일본식 발음)’라는 단어를 듣고 노보루가 고뇌를 하고 있다. 溶解(용해), 妖怪(요괴), 洋灰(양회) 모두 ‘요우카이’로 발음되기 때문에 한자로 어찌 써야할지 고민한다. “양회가 토오루의 생명을…….”, “용해가 토오루의 생명을…….”, “요괴가 토오루의 생명을…….”등등 예문을 만들어보다가 요괴로 최종낙찰을 본다. 다시 말하면 동음이의어를 사용하여 요괴가 낫선 현대 세대를 다소 코믹하게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행히도 한국에선 애초에 고등학생이 한자 동음이의어로 그리 고민할 일도 없으려니와 요괴의 동음이의어 자체가 전무하기에 위와 같이 얼렁뚱땅 넘겨버렸다. 아마 번역자도 상당히 고민했을 것이다. 이 때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위와 같이 적당히 얼버무리는 방법, 아니면 억지로라도 동음이의어를 만들어 비슷한 개그를 하는 것, 마지막으로 원문 그대로를 번역하고 각주로 해당 부분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선 논란이 많을 것이다. 나는 되도록 첫째와 둘째 방법을 선호한다. 물론 번역자 입장에서는 머리가 터지는 일일 테고, 독자 입장에서는 어색한 개그를 보거나 혹은 개그 자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읽게 된다. 나처럼 뒤늦게 원서를 따로 보고 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번역이란 작업이 그런 게 아닐까? 더욱더 고민을 해서 최대한 부드럽게 읽도록 만드는 게 번역자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은 제2의 창조니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세 번째, 주석을 다는 건데, 가장 원문에 충실(?)하고 번역자의 부담도 줄이지만 소설에 주석이 많이 들어가는 건 좀 별로다. 학술 서적도 아닌데 중간에 괄호를 넣어 설명하거나 주석이 줄줄 달리면 중간에 흐름이 끊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 중에도 어설프게 하느니 세 번째가 낫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결국은 번역자 혹은 편집부의 선택인데, 나라면 첫 번째나 두 번째에 최대한 가깝도록 번역을 할 것 같다.
덧글
...라고 하면서 정작 자기 작업물에는 주석으로 떡칠을 해 놓고 있습니다.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