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8집 감상 - 더 이상 랩을 하지 않는 서태지
소장 중인 서태지의 '정규' 앨범들. 이 중 1~4집은 재발매판.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대사건이었다. 그들의 노래는 물론이고, 그들의 사고 방식, 활동 형태와, 패션 등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그 중 음악적으로 가장 관심을 많이 모은 것은 그들의 한국어 랩이다. 랩은 연음이 거의 없는 한국어의 특성상 성립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홍서범의 '김삿갓'같은 노래에서나 실험적으로 시도되는 것이었다. 그런 랩을 서태지는 시도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자연스럽게 곡 안에서 춤추도록 하였다. 이후 이현도나 김진표을 비롯한 힙합 가수들이 이 랩을 계속 업그레이드 시켰지만, 한국어 랩을 확실히 정착시키는 데 서태지만한 공헌자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즉 랩하면 서태지고 서태지하면 랩이었다. 서태지의 음반에서 랩이 빠졌던 적은 없었고, 랩은 그의 음악에서 항상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 8집에서 그는 완전히 랩을 버렸다. 이후 다시 필요하면 들고 나올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번 앨범에서 랩이 들어간 곡이 한 곡도 없다는 사실에 참 의아했다. 물론 강박적으로 랩을 넣을 필요는 없다. 지금 추구하고 있는 음악이 그런 것이려니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가지 아쉽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서태지가 랩과 함께 '사회와 함께 숨쉬기'를 같이 포기 한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서태지의 랩은 처음에는 음악적 형식때문에 주목받았지만, 음반이 반복되면서 그 가사에 시선이 쏠렸다. 굳이 '발해를 꿈꾸며'나 '교실 이데아'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난 알아요'의 "어렵다는 편지는 쓰지 않아도 돼"라는 가사가 무슨 신세대의 새로운 경향을 예표한다느니 어쩌느니 떠들던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랩이라는 음악적 형태가 공격적인 어조에 어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태지가 랩을 한다는 것은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솔로 컴백 이후에도 그는 '대경성' '인터넷 전쟁' 등 랩을 통해 강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았었고, 7집에서도 'FM 비즈니스'는 랩을 통해 돈으로 굴러가는 음반시장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정확히는 랩은 아니지만, 랩과 비슷하게 각운을 맞춘 '라이브 와이어'도 그렇다.

서태지의 랩 가사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과 맞닿아 있다. '됐어 됐어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는 단순한 가사를 따라부르며 열광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이 기억난다. 그 시절 서태지가 진정 10대들의 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억눌린 10대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서태지가 단순한 딴따라가 아니라 사회현상까지 불러일으키며 논쟁의 중심이 되었던 것도 '시대유감'같이 잘못된 사회에 대한 처절하지만 속시원한 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인터뷰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서태지가 '자신은 음악으로만 평가받기를 원하는데, 사람들은 가사만 본다'라고 불만섞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8집 앨범의,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는 가사는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이미지의 나열뿐이다. 세상은 각박하게 돌아가고, 10대와 20대를 포함한 대다수의 일반 서민들은 죽어가는데 서태지는 더 이상 그들을 대변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광적인 사운드의 집착만이 남아 있다.

어쩌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때 주변에서 서태지 빠로 통했을 정도로, 중 고등학교 시절을 서태지와 함께 보냈던 과거의 팬으로서 이번 앨범을 접하며 느끼는 솔직한 심정이다. 여전히 멋진 음악을 들려주고 있지만, 때로는 둥지에서 나와 평범한 보통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by 젠카 | 2009/07/11 01:16 | 음악 나눔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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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오즈 at 2009/07/11 01:26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그의 가사내용은 같이 호흡해 왔던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게 되어 버렸으니.
저는 그래도 사운드에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그가 반갑네요. 그런 장인정신이라도 필요한 한국 음악계라고 생각이 들어서.
Commented by 젠카 at 2009/07/12 00:33
사운드에 광적인 집착을 하는 게 나쁘다는건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거죠-ㅂ-. 뭐, 제가 이렇게 써갈겨놓았지만, 다음 앨범엔 또 어떤 컨셉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Commented by 무곡 at 2009/07/14 19:48
메세지를 전하는 것에 많은 노력의 기울이던 그가 메세지를 포기했다는 의미로는 보기 힘듭니다. 다만,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테마가 우주를 뜻하기에 랩이 궂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르죠. 무엇보다도 그가 결정한 일일테니 앞으로의 그의 행보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합니다 ^^;
Commented by 젠카 at 2009/07/15 00:02
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죠. 사운드에 관한 극적인 추구는 그만의 매력이 있기도 하니까요^^;
Commented by 아침의코 at 2009/07/14 23:25
저도 좀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이번 앨범은 정말 사운드에 아주 충실했던 음반이었다는데 만족하지만, 반면 조금 아쉬웠던건 가사가 너무나도 초현실적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이번 8집 컨셉 자체가 미스테리 였으니 아무래도 더욱 그러한 가사가 나왔다는 생각은 드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알아듣기 쉽게 가사를 써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글구 다음 앨범에는 시원하게 아픈곳을 찔러주는 랩이 들어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구요
Commented by 젠카 at 2009/07/15 00:05
컨셉이 좀 그렇긴 했죠. 사실 외계인같은 거는 이미 한번 하긴 했지만(5집);; 이번엔 특히 심해진 것 같아요.
Commented by 홍대호 at 2009/07/17 12:57
코마 가사 안읽어봤어요?
레플리카 틱탁 가사 안읽어봤어요????
Commented by 젠카 at 2009/07/21 23:04
읽어봤는데요; 왜 물어보시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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