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무엇이 '한국적'인가?
솔직히 까고 말해 ‘한국적’이 뭔가? 이건 뭐 라이트노벨이 무엇인가 정의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 아닌가? ‘한국적’이라는 단어에서 사람마다 머리에 떠올리는 게 다 다르니 애초에 말이 안된다.


이 ‘한국적’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은 유달리 만화나 애니메이션 분야에 더욱 많은 것 같다. 한국적 영화, 한국적 드라마, 한국적 대중음악(<-이건 그래도 좀 있다. 일부러 사물놀이같은 거 집어넣고 하는;)이라는 말들은 상대적으로 쓰임이 적다. 굳이 영화나 드라마 만들 때 한국적인 소재 쓰려고 노력하는 거 봤는가? 한류 붐에 편승해 조금 있었을지는 모르나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런 거 신경쓰면서 만드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만화나 애니, 그리고 라이트노벨에 ‘한국적’인 것에 유난히 집착이 많은 이유는(최근에 라이트노벨까지) 역시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류를 이루는 작품들 스타일이 대부분이 ‘일본풍’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망가풍’이라는 일본에 뿌리를 둔 망가/아니메문화가 전세계 속에서 하나의 코드가 되고 있는데 이건 전세계에서 일본에서밖에 생산이 안되기 때문이다. 한국 것이 이와 큰 차이가 없는 경우 결국 그게 그것처럼 보이는 데에 대한 위기감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닐까? 서양 사람 데려다 놓고 한국만화와 일본만화를 구분하라 그러면 구분할 수 있을까? 물론 망가풍 작가가 미국에도 상당히 있고, 대만 쪽에도 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을뿐더러, 한국 만화 역시 세계 시점에서 봤을 땐 그저 '망가'일 뿐이다. 영화는 헐리우드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으며, 그림체가 스타일을 크게 좌우하는 만화/애니라는 매체에 비해 위화감이 적기에 헐리우드 풍으로 만들어도 한국적이지 않다고 까지는 않는다. 만약 망가/아니메가 동서양 가리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현상이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한국적인 것을 추구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망가/아니메도 일본인들이 ‘일본풍’을 만들어야 한다고 고민해서 나온 것도 아니다. 일본 특유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연출은 데츠카 오사무가 헐값에 TV애니를 만들면서 어쩔 수 없는 눈속임 연출을 만들다보니 정립된 것이다. 일본 만화시스템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만화와 무슨 차이를 내려고 만든 것도 아니다. 그냥 하다 보니 자기네들 스타일이 생긴것이다. 애초에 망가/아니메는 내수용이다. 그게 국제적 코드로 번진 건 빨리 잡아도 1990년대 이후다. 소위 오타쿠코드들(츤데레니 모에니 하는 것들)도 일본적인 거 만들려고 해서 만든거 아니다. 그냥 일본에서 나왔으니 일본 것처럼 보이는 거지. 그리고 일본의 '전통적', '일반적', '국민적' 정서랑도 별 관련없다. 망가/아니메/오타쿠 풍이라면 몰라도 일본풍이라고 말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한국적인 작품은 일부러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안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한국 라노베 작가들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일본식 어휘나 말투,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고등학교 교실 풍경 같은 거야 고쳐야 하겠지만 이건 ‘한국적’어쩌고 하기 이전의 문제다. 특히 정서적인 부분은 의식한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굳이 한국적인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만화 <힙합>을 뽑겠다. 분명 한국이 배경인 것 같고, 주인공 사고방식부터 말투와 정서 모든 게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솔직히 일본 만화의 본격적인 유입 이전의 작품들(즉, 1980년대 이전의 작품들)은 대단히 한국적인 작품이 많다고 생각한다. 뿐만아니라 최근의 웹툰들도 대부분 한국적이라 생각한다. <마음의 소리>는 한국적 작품이다.


하지만 일부러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한국적 정서는 얼마든지 스며들 수 있다. 때로는 무의식 중에 외국인들에게 위화감이 일어나는 설정도 있다. 윤인완/양경일 콤비의 <아일랜드>는 잘 알려졌다시피 소위 말하는 일본 풍 만화고, 망가의 본토인 일본에도 수출 되었다. 하지만 원미호가 처녀라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끼는 일본 사람이 있었다. 의외로 그런 부분들이 한국적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장르가 되든 멜로로 빠지는 드라마라든가, 조폭 영화 같은 게 어쩌면 한국적이라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콘텐츠의 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한국적인 거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한국적이라는 것을 ‘굳이’ 정의하면 한국적 정서가 담기는 거다. 그런데 그 한국적 정서라는 것도 일부러 집어넣으려 안달할 필요 없다.”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국적 코드’ 이런 건 무조건 작품이 수도 없이 쏟아져야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만화/애니/라노베 분야는 불행히도 이런 부분에서 너무 열악하다. 진짜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by 젠카 | 2009/05/12 23:39 | 생각 나눔 | 트랙백 | 핑백(1) | 덧글(13)
트랙백 주소 : http://taeppo.egloos.com/tb/413801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나눔이 있는 오름직한 동산 :.. at 2009/08/13 15:20

... 쓸 수 없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만화나 라이트 노벨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에 있어선 이전에도 논란이 있긴 했습니다만, &lt;월하의 동사무소&gt;는 제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것에 가장 잘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어설프게 전래 동화 같은 거 차용하는 것이 아닌 진짜 현대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고 있지요.일단 동사무소(지금은 주민 센터라고 ... more

Commented by Ciel at 2009/05/12 23:56
새삼스럽게 한복이니 도깨비니 하는걸 신경쓰지 말고.
그냥 주변만 둘러봐도 '망가'와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젠카 at 2009/05/15 01:23
그냥 재미있게만 만들면 됩니다.
Commented by sai at 2009/05/13 00:20
주인공이 영화나 만화를 공유프로그램으로 다운받아보고 DC에서 키보드 워리어질을 하며 고등학생이 이계로 넘어가는 소설을 즐겨 읽는데다 TV에서는 불륜 드라마가 흘러나오면 한국적입니다.
Commented by 젠카 at 2009/05/15 01:24
어쩐지 슬퍼지는데요=_=
Commented by aLmin at 2009/05/13 00:47
시간이 약이군요..
Commented by 젠카 at 2009/05/15 01:24
시간+많은 작품. 그리고 그러기 위한 환경조성!
Commented by 쓰레기청소부 at 2009/05/13 18:56
굳이 한국적이라면서 어정쩡한 태극무늬나 박아대면서 의미없는 논쟁을 벌이고는 하는데 말씀하신대로 문화에 있어서 집착은 무시만 못합니다. 점점 컨텐츠의 수가 늘어나는데 무엇으로 감당할까요
Commented by 젠카 at 2009/05/15 01:24
네네 맞습니다^^
Commented by 하나린 at 2009/05/15 23:07
결국 신경쓰면 지는거죠(...) 지금 까이는 국산 라이트노벨들도 한국적이다 뭐다 들먹이다 까이는 경우도 있구 말이죠..하하;;
'한국적인 라이트노벨'에 집착하지 말고 작가다운,'나'다운 소설을 쓰는게 좋은 작품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하네요^^
Commented by 젠카 at 2009/05/15 23:15
네, 맞아요. 보다 개인에게 맞춰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른말 필요없고 재밌으면 되요^^;
Commented by 파이어 at 2009/05/20 00:06
한국 고유의 문화를 살리는 것도 좋지요. 하지만 외국의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요. 그리고 만화와 같이 한국적인 것이 열악한 분야에는 일단 선진국을 모방하면서도 한국적인 시도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만화가 그렇게까지 열악한 위치라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Commented by 젠카 at 2009/05/20 22:35
근데 한국적인게 뭐냐는 말이죠; 제 말은요...
Commented by 윤소현 at 2009/08/28 18:50
으음.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