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한가> 1권 - 한을 풀어주는 사람

<해한가>는 조금 독특한 전개방식과 함께 기존 라이트노벨과 일러스트 스타일이 판이하게 달라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해안가’로 봐서 무슨 바닷가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라 解恨家, 즉 한을 풀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야기는 채민, 유천, 재영이라는 세 사람의 시선에 따라 전개된다. 1인칭 소설이지만 세사람이 번갈아가며 화자를 맡는다. 각자의 시선에서 따로따로 사건이 전개되는 듯 하나가 하나로 뭉치는 식으로, 스릴러 영화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세사람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하나는 사회에서 나름대로 잘나가는 천재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의 감정을 각각 눈과 맛과 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사람은 채수라는 인물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다. 아니면 자신들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정말 어이없이 교통사고로 사망위험에 빠진 채수에게 묘한 죄책감을 느끼는 세사람. 셋 다 잘난 사람들이지만 어딘가 세상으로부터의 소통에 소외되어 외로움에 떨고 있다. 그런 그들을 허물없이 진심으로 대해주었던 사람이 채수다.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죽는 채수.


해한가는 그런 한을 풀어주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무슨 퇴마사같은 것은 아니고, 말과 음악으로 한을 달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면 주인공이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조금은 신비한 인물이기 때문에 사실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속편을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딘지 너무 완벽한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인물이 속내를 드러내거나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해한가랑 가장 유사한 캐릭터는 채수. 혹시 작가가 기독교인이 아닐까 슬쩍 의심이 갔던 것도 이 캐릭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남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이 캐릭터를 보면서 예수님을 떠올렸던 가장 큰 이유는 위 세 인물이 채수의 죽음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향해 가지는 감정과 어느 정도 유사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떼를 썼는데, 내가 그렇게 싫어했는데, 끝까지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나 때문에 죽었다’라는 인식이 너무나도 닮았다. 실제로 이런 인물이 존재한다면 그야말로 존경할만한 영웅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단편인 <물망초>를 통해 채수 시점의 이야기를 삽입해놓음으로써 그런 면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1인칭을 사용하면 신비감이 떨어진다고나할까?


아쉬운 점은 결말. 그렇게 격렬하게 떠들고 싫어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세 사람이 너무 쉽게 한이 풀린다는 것. 원래 갈등해소를 설득력있게 묘사하는 게 엄청 어렵다고는 하지만, ‘감동적’인 결말을 일부러 만든 듯 한 인식을 준다.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고, 이 분량에선 적절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다.


이 소설은 다른 라노베에 비해 한국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사실 ‘한국적’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겠다. <서편제>같은 영화에서 다룬 한(恨)은 이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이 소설이 한국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복나오고 김치나온다고 한국적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솔직히 막말로 1990년대 중반 이후 나오는 한국 만화들은 일본만화에 영향을 지나치게 받은 탓인지 몇몇 작품들은 한국 배경에 한국 이름을 가진 인물이 나오지만 어딘가 일본같은 느낌을 주는 주기도 했다. 라이트노벨도 비슷하다. 이 작품이 한국적인 것은 입시에 찌들어 사는 채민 등의 캐릭터를 통해서 여기서 나오는 ‘강남’이 진짜 ‘강남’같이 느껴지는 그런 묘사에 있다. 적어도 일본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머지 작품들은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정말 괜찮은 작품이라는 것. 물흐르는듯한 필체도 좋았다. 굳이 라노베를 즐겨보는 독자가 아니라도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 정보





해한가 1
나승규 지음, Apple 그림
디앤씨미디어
2008

by 젠카 | 2009/05/03 01:14 | 독서 나눔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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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펑거스 at 2009/05/03 01:43
오, 보셨군요ㅠ 요즘 해한가가 후평가에서 좀 까이던데 그 이유중 하나가 이런 인물들의 한이 결말에서 그냥 풀려버린다는 점이더군요... 전 그냥 콩깍지가 씌여버려서 아무 탈 없이 읽었지만 4권부턴 좀 콩깍지를 버려야겠지 않나 싶습니다[...응?]

요샌 이 소설을 누른 새로운 국내 정서를 가득 반영한 소설이 나왔습니다... '그대에게 만능주문을!' 이라고... 그런데 이건 해한가와는 전혀 다른 코드인데다 한국적인 감성'만'을 가득 자극한 것이라 감히 추천은 못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젠카 at 2009/05/05 15:00
<그대에게 만능주문을!>이라... 한 번 확인은 해봐야 할 듯^^;
Commented by Skeith at 2009/05/03 02:36
얼마 전에 보시는걸 봤는데 다 읽으셨군요. 감상 잘 읽었습니다.
전 '한'이라는 소재가 조금 신경 쓰여서 읽지 않았습죠. 재미있어 보이지만 읽으면서 기분이 오묘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젠카 at 2009/05/05 15:01
읽은지는 2주도 더 되었다만;; 감상 쓰는 게 늦어서=_= 한번 읽어봐. 별로 라노베 읽는 듯한 느낌은 안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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