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찌무라 간조의 글 한토막

9월 13일
노을 진 저녁 무렵은 항상 고요하고 아름답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는 순간, 내가 육신에 대해서 죽어 있으면 마귀들은
절대로 공격해 올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육신(죄)에 대해 죽는' 것은, 죄로 가득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서 될 일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만 가능하다. 나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서 나는
어떠한 정복자와도 비견할 수 없는 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매우 신선했고, 오늘 하루의 모든 짐도 일순간
잊혀졌다. 감사가 넘쳤고, 성만찬으로 그 날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야생 포도 한 송이를 따서 약간의 즙을 내어 자그마한
사기 그릇에 비스킷과 함께 내놓았다. 이것을 깨끗한 손수건
위에 올려놓고 그 앞에 앉았다. 감사 기도를 드린 후 감사의
마음으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다. 매우 신성한
행위였다. 내가 사는 동안에 이 의식은 계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신성모독이군! 성스러운 의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라고 교회 의식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천주교인들은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은 로마교황과 그의 동료 사제들이 갖고 있는 성례를 주관하는 특권은 못마땅해하면서, 같은 인간인 우리가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에는 왜 인색하게 구는가! 교황은 의식을 거룩하게 하는 배타적인 권위가 없고, 그의 직책(vicarship)은 단치 상상 속의 허구일 뿐이라면, 당신은 어떤 권위로 당신의 '사도성(apostolicity)'을 주장할 것인가 말이다.

내가 아는 어느 일본인은 한 복음주의 교회에 등록하면서 자신을 세례 받은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했는데, 어떤 권한을 가진 성직자가 세례를 주었으냐는 질문에 '하나님'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진상은 이렇다. 어느 여름날 오후, 그는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안에서 용서를 체험했다. 그는 이 사건이 거룩한 세례를 받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거주지에서 42킬로미터 이내에서는 '세례를 줄 수 있는 허가를 받은 목회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때 마침 그 지역에 참으로 신선한 여름비가 내렸다. 그는 하늘이 직접 자신을 그 거룩한 의식으로 초대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빗속으로 곧장 달려 나가 그 곳에서 경건한 자세로 자신의 온몸을 '하늘의 물'로 흠뻑 적셨다. 이러한 세례 의식은 그의 양심을 만족시켰고, 그 때 이후로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동포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고백했다. 성례를 집도하는 인도자와 금으로 된 성배를 숭상하는 사람들을 나는 상관하지 않으니, 이 일에 대한 나의 기호도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그리스도이시며,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는 자유가 있기를!

-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홍성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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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카 | 2008/06/20 00:24 | 이것 저것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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