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네 츠네히로의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을 읽다보니 든 잡상을 기록. 이번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의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쓰고나니 어그로성 글이 되어 버렸지만...
이번 <신극에바>가 공개되고 반응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잘 끝났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한편으로 특정 캐릭터들의 커플링이 마음에 안든다고, 온라인상에 폭언을 퍼붓고 있는 층도 있다. 전자라면 비오타쿠, 후자라면 오타쿠라는 식으로 장난삼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진지하게 오바하면 전자는 인생의 여러 관문을 겪으며 성장한 사람, 후자는 아직 성장하지 못한 사람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이번 <에바>는 청소년기에 <에바>를 접해 여러 산전수전을 겪어 어른이 된 이에게 여러의미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 거라 본다.
오타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일반적으로 한가지 특징을 든다면 보통은 어린애들 용이라 생각되는 콘텐츠(만화, 애니, 특촬, 게임 등)를 성인이 되어서도 즐기는 층을 말하기도 한다. 몸은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는데 정신은 어린시절, 청소년시절 그대로라 어딘가 미성숙한 어른같다. 우노 츠네히로 같은 경우는 이러한 오타쿠 문화의 특징을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에 빗대기도 한다. 즉 경제(몸)는 성장했는데 정신(사상, 내면)은 12세소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성장을 말하지만 실제론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기를 바라는 일본 아이돌 문화와도 연결된다. 이를 소비하는 오타쿠들은 작품들을 반복해서 보며 현실에서 눈을 돌려 영원히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고자 한다. 여기서 성장이란 자신과 가족의 인생에 책임을 지는, 현실에 충실한(리얼충) 삶의로의 이행을 뜻한다.
<에바:Q>를 보면 구작 <에바>에는 없었던 새로운 설정이 나온다. '성장하지 않는 육체'가 그것이다. 에바를 타는 파일럿들은 '에바의 저주', '에바의 주박'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육체가 14세 소년, 소녀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 '에바의 주박'을 메타적으로 해석하면 25년이 지나도록 <에바>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주변을 서성거리는 팬들과 감독 자신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산업적 요인 때문에 끝없이 같은 세계를 루프하는 일본의 장수 애니메이션들-<사자에상>, <도라에몽>, <짱구는 못말려>, <명탐정 코난> 등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낚시성 글로 <짱구> 마지막편 같은 게 인터넷에 도는 데 그런 작품들은 어김없이 성장한 짱구를 그리고 있다는 게 상징적이다. 즉 이 같은 작품들의 캐릭터들이 진짜로 성장해 버리면 작품 자체가 끝나는 거다.
<신극에바>를 보고 <에바>가 끝났다고 느끼는 감정이 드는 이유는 모든 캐릭터들이 내외적으로 "진짜로"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다는 점에 있다. 주인공 신지는 구작 <에바>처럼 자기계발세미나 같은 독백을 하지 않는다. 주변의 조언을 듣고, 받아들이고, 절망 중에 일어나서 정면으로 현실을 마주한다. 구작 <에바>의 신지가 "어쩌다 보니" 세계의 신이 된 반면에, <신극에바>의 신지는 "확고한 자아를 갖고" "스스로" 세계의 신이 된다. 쿠로레이나, 아스카도 자신의 몸에 선재된 프로그래밍에 저항하는 선택을 하면서 뚜렷한 자아로 자신의 길을 간다. 겉으로만 어른이었던 미사토도 구작의 최후와 다른 방식으로 모두와 화해하고 마음의 결정을 다진 이후에 끝을 맞이한다. 아이다 켄스케는 중학생 때의 밀덕 모습이 싹 사라지고, 마을사람들을 위해 그 방대한 지식을 책임지고 활용한다. 토우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듬직한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려나간다.
이러한 장면이 소위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오타쿠들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을 거다. 그들은 여전히 멋진 에바들이 끊임없이 사도를 무찌르는 세상, 그 와중에 중학생 캐릭터들이 사랑싸움하는 그런 그림을 무의식중에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성장하기를 선택한 (구)오타쿠들은 주인공들의 어른스런 모습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을 투영하게 된다. 구작 에바를 보던 청소년들이 어느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현실에 책임을 지게 되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청소년기를 겪었던 캐릭터들이 나와 비슷하게 성장해서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아 잘 살고 있구나." "이제 놓아줄 수 있겠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난 이번 <신극에바>전 시리즈는 모든 캐릭터들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창작자인 안노 자신의 변화와 성숙에 대한 답변인 것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어른이 된 그들과 이제 "작별"할 수 있다.
결국 신지도 어른이 되었다. 영원한 히키코모리 같았던 애가 직장도 다니고(아마?) 여친도 사귀면서 닭살 돋는 짓을 한다. 관객도 어른이 되었다. "아이고 우리 신지가 어느새 ㅎㅎ"라는 생각이 들면 본인도 성장한 것이다. 반면 "나의 에바는 이렇지 않아"를 외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에바의 주박에 계속 빠져있고 싶은 사람들로 보인다.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대지만, 결국은 에바가 진짜 끝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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