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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7 20:59

케이팝과 제이팝의 오리지널리티? 생각 나눔

오리지널리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어떤 표준적인 것이 존재하고, 거기에 대해서 자신의 걸 어떻게 위치지울 수 있느냐에 따라서 드러나는 것이다. 간혹가다 전에없던 새로운 것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 예외적인 아주 드문 현상일 뿐이고... 그것 역시 보편적인 표준과 비교해서 드러난다는 점에는 다르지 않다. 근데 그 표준을 애써 무시하고 자기식을 고집한다고 그게 오리지널리티로 인정받고 곧바로 우수함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간혹 J-pop을 쉴드친답시고 K-pop은 영미권을 흉내냈을 뿐이지만 J-pop은 일본만의 독특함이 있다는 논리를 들이미는 이들이 있어서다. 그 말대로 K-pop은 많은 부분 영미권의 주류 음악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똑같은 건 아니다. 마냥 똑같기만 해서는 이렇게 뜨질 않는다. 비슷하지만 뭔가 다르니까 뜬거지. 이런 걸 두고 K-pop의 하이브리드 성이라고 부르는 논자도 있더라.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K-pop은 영미권의 주류음악을 흉내낸 것이 아니라 그냥 표준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팝 음악의 수준에 맞춘거다. 서태지가 20년전에 그알에서 인터뷰한 거 보니까 왜 외국음악을 따라하냐고 기자가 물으니까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대중음악이 발달한 곳은 미국이고 그 미국의 주류 음악을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요지로 답을 하더라. 실제로 2000년대 초반까지 서태지 음악은 미국의 주류 음악을 소개한 면이 있다. 어쩌면 선민의식 처럼 보여서 좀 아니꼬울 수도 있는데, 우물한 개구리 같은 한국 대중 음악계에 질 좋은 선진 문물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분명 의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태지만의 개성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발해를 꿈꾸며나 교실이데아, 컴백홈, 시대유감 등은 철저하게 한국적인 환경과 영미권 음악의 하이브리드 속에서 탄생한 음악이다.

이후 발전하기 시작한 한국의 아이돌 그룹 문화도 이와같은 세계 표준을 의식하는 가운데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본인들이 의도하든 아니든 단순한 카피만은 아니었다. 개성은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아니라면 그냥저냥 소비되고 도태될 뿐.

일본 역시 처음엔 해외를 의식하면서 J-pop이 커왔겠지만, 90년대 들어서 세계주류음악이 힙합같이 리듬위주의 음악으로 변해갔던 것과 다르게 락을 중심으로 멜로디컬한 음악이 주류가 되었다. 그게 심화되면서 일본만의 자기완결적인 갈라파고스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만 해도 충분히 돈이 벌리니까. 물론 그것 역시 일본만의 개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 그 자체를 나쁘다거나 열등하다고 말할 것은 아니다. 그래, 세계주류 음악과 J-pop이 많이 다른 건 사실이니 굉장히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건 알겠다.

문제는 "세계를 노린다"고 했을때, 자신들이 세계의 주류적 감성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부러우면 적어도 그 세계표준 수준에 도달을 하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개성을 발휘하도록 궁리를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냥 일본은 일본의 길을 가겠다는 반응은 발전의 여지를 그냥 스스로 없애고 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리지널리티인 건 맞지만 그냥 우물 속에서의 오리지널리티일 뿐인거고, 그걸 좋아하는 외국인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절대 보편적인 것이 될 순 없다. 

뭐랄까, 세계표준적인 스타일과 수준(레벨)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개성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발상은 다르게 말하면 이런 거 아닐까? 

그림쟁이: 뎃셍을 못하는 게 저의 개성입니다.
소설가: 저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기 위해 다른 작품은 하나도 읽지 않습니다.
연구자: 제 연구의 독특함을 위해 선행연구와 아무런 관련이 없도록했습니다.

2020/10/26 14:28

애니 <귀멸의 칼날> 극장판의 성공 배경엔 코로나가 있다? 애니 나눔

*저는 일본에 거주 중입니다.

귀멸이라는 현상

요즘 <귀멸의 칼날> 극장판이 대세다.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그걸 느낄 정도다. 흥행 첫날부터 대박 조짐이 보이더니 그 <겨울왕국>이나 <너의 이름은> 같은 작품들의 흥행수익도 다 뛰어넘을 기세다. 이 코로나 시국에 이상할 리만 한 극장용 영화의 히트에 <귀멸> 자체의 매력에 관련된 분석들이 눈에 띈다. 물론 그런 작품 자체의 힘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코로나 때문에 더욱 히트했으리라 짐작한다.


넷플릭스 등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귀멸 현상의 상관관계

먼저 <귀멸의 칼날>이라는 작품 자체를 보자. 이 작품은 그 유명한 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총 23권으로 연재를 끝낸 작품이다(단행본 23권은 아직 미발매). TV 애니메이션은 2019년에 총 26화로 방영되었고, 원작의 부족한 부분까지 보완한 완벽한 완성도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주제가를 부른 LISA가 연말 홍백가합전에 이 곡으로 참가할 정도였다.

대단한 인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애니 정도였지 이렇게까지 큰 붐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애니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일반인에겐 그냥 그런 애니가 있구나 정도로 넘어갈 수준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집에서 틀어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따금 장 보러 가는 슈퍼에는 별 관련 없어 보이는 껌에까지 귀멸 캐릭터가 붙어 있었고, (<귀멸>을 보고 난 이후에 발견한 거긴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일절 상관없어 보이는 '유니클로' 택배 박스에 까지 <귀멸>의 그림이 박혀있었다.

이 정도쯤 되니 이게 뭔데 이러나 싶었는데, 때마침 가입한 넷플릭스에 <귀멸의 칼날>이 보였다.

최근 일본 넷플릭스를 이야기할 때면 다들 <사랑의 불시착>이나 <이태원 클라쓰> 같은 한류드라마 이야기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베스트 10중에 절반 이상의 작품이 한류드라마니까. 한류에 주목하는 건 일본 미디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간과 말아야 할 건 그 한류드라마 이외의 나머지 작품은 전부 일본 애니라는 점이다. <귀멸>은 적어도 6개월 이상 그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귀멸 캐릭터를 보다가 어떤 작품인가 싶어 한 번쯤은 클릭하게 된다.

더욱이 <귀멸>은 넷플릭스에서만 서비스되는 작품이 아니다. 아마존 프라임이나 훌루 등, 일본에서 정액제 동영상 서비스를 신청하는 이라면 누구나 <귀멸>을 볼 수 있다. <슬램덩크>같이 옛날 작품이 아닌 이상 이렇게 많은 플랫폼에서 동시에 서비스되는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코로나와 더불어 이러한 공격적인 서비스는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그리고 <귀멸>의 작품 자체도 꽤 넓은 타깃을 포함할 수 있다. 솔직히 처음 몇 화는 다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설정 때문에 그냥 전형적인 점프게 애니 정도로 보이긴 했다. 심지어 요즘 세상에 '성장형 주인공'이라니... 전형적인 걸 넘어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근데 또 전형적인 라는 건 오히려 시청자에게 안도감을 주기도 하는 법이다. 묘한 감상이기는 하나 최근 작품인데도 옛날 작품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심지어 주연 성우는 젊은 사람들이지만, 단역 오니 역으로 나오는 몇몇 성우는 본좌급 성우(90년대에 주로 활동하던)가 섞여 있어 묘하게 향수를 자극했다. 또한 소재 면에서도 장난감 판매 광고 같은 아동용 작품이 아니면서도, 모에나 BL 같은 섹슈얼리티가 강조되는 소위 오타쿠 작품 또한 아니었다. 이러한 요소가 연령상으로 상당히 넓은 층을 커버하는 데 크게 일조하지 않았는가 한다. 작화나 연출 등, 작품 자체의 완성도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귀멸 극장판의 전략

그렇게 26화를 정신없이 보고 나니 두둥! 끝이 났는데 끝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은 새로운 사건을 좇아 열차를 탄다. 그리고 그 열차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번에 개봉한 극장용이었다.

통상 TV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극장용 작품이 나올 때는 별개의 에피소드를 창작해서 스페셜 판이나 스핀오프 같은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대신 1기에서 끝난 이야기는 2기 시리즈에서 이어가고. 근데 <귀멸>은 극장용에 메인 스토리를 넣었다. TV 판 마지막 장면과 바로 이어지도록 말이다. 그러면서도 무한열차라는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는 영리함을 보여, 스페셜 판 같으면서도 스페셜은 아닌 영화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후지TV 계열 방송국에서는 TV 시리즈를 두 편으로 나눈 편집본(그냥 매화 반복되는 오프닝 엔딩 정도만 잘라내고 연속으로 틀었음)을 개봉 직전에 몰아서 방송한다. 마치 이거 보고 영화 보면 더 재미있을 거라는 듯이. (<에반게리온 신극장판>도 비슷하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비롯해 여러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기간 한정 등으로 기존 극장판을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음).

정작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아직 극장판을 못 봤는데, 사전 정보 없이도 무난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TV 판을 보고 싶으면 보라는 듯이 온갖 곳에 <귀멸>을 볼 수 있는 루트를 열어놓았다.


멀티플렉스를 지배한 귀멸

<귀멸> 개봉과 관련해 한 가지 특이한 경험이 있다. 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한 일본인 학생분이 지난주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극장에 갔는데, <귀멸>밖에 안보여서 결국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봤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에 난 많이 놀랐다. 한국에서라면 흔한 경험이다. 멀티플렉스영화관이 대세 영화에 편승해서 사실상 특정작품을 독점시켜버리는 이야기는 명절 때마다 나오는 불평에 다름아니다. 근데 일본은 그런 일이 잘 없다. 한국은 특정 대세 작품을 중심으로 단기간에 뽕을 뽑고, 다음 작품에 넘어가는 구조라면, 일본 멀티플렉스는 대세 작품이 있어도 많은 스크린을 차지하게 하진 않는다. 대신 오~래 상영한다. 한 작품이 6개월 이상 가기도 한다. 이건 영화를 대하는 양국의 소비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귀멸>은 그 공식을 깼다. 예를 들어 나고야역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인 미들랜드 시네마의 1관과 2관 모두 <귀멸>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겨울왕국> 같은 작품 정도가 1관에선 더빙, 2관에선 자막 같은 형태로 걸려있는 정도였다. <귀멸>은 아예 같은 작품이 스크린 두 개 이상을 차지하는 기현상이 일어난 거다.


이건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코로나 때문이다. 예로든 미들랜드 시네마도 한 달 넘게 극장을 쉬었고, 운영해도 예전보다 절반 정도밖에 관객을 받을 수 없었다. 개봉 예정 영화도 다 미뤄지는 판에... <귀멸>이라는 구세주가 나타난 거다. 딱히 경쟁상대도 없겠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귀멸>에 몰아주기 한판.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않으면 극장 망하게 생겼다. 이례적인 화제가 되면서 더욱 관객이 몰려들고 있는 것 같다.


귀멸 이후는?

요는 코로나 시국에 의한 넷플릭스 등의 동영상 서비스의 흥행, 그리고 이를 노린 공격적인 마케팅, 적절한 개봉 타이밍과 극장의 사정이 겹쳐 이례적인 흥행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작품 자체도 좀 잔인한 걸 제외하면 누구나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취향 덜 타는 왕도형 작품이고...

90년대 중반에 심야에 재방송되면서 폭발적인 붐을 일으킨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겹쳐 보이는 부분도 있다. <에바>의 히트가 심야시간대 TV 애니와 제작위원회방식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으니까 말이다. <귀멸>도 넷플릭스 등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연관되어 일본 애니 산업의 새로운 길을 터 줄지 어떨지...  앞으로가 기대되는 상황...

암튼 <귀멸>의 흥행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 차원에서 적어보았다. 이번 주엔 함 보긴 해야할텐디….


2020/09/27 22:46

한때 동경하던 일본에 대한 잡상 생각 나눔

워크맨이나 건전지, 비디오 등 한때는 일본이 신기하고 새로운 전자제품을 만드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게 끊기기 시작한 게 언제쯤 부터일까?

내 기억상으로 마지막으로 "일본이 만든 신기한 전자체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MD였다. CD의 뒤를 잇는 차세대 음성저장매체처럼 보였고, 심지어 녹음도 가능했다. 고딩 때 반에서 좀 앞서가는 친구들은 MD플레이어를 샀고, 자기만의 컴필레이션을 만들어 여러장 들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동시기에 MP3 플레이어도 유행했다. 단, 당시 저장용량에 한계가 있었기에, 여러장을 들고 다닐 수 있는 MD가 더 좋아보이기도 했다.

그게 20여년 전, 그러니까 한 2000년 전후였다. 가끔씩 보던 일본 잡지에 실린 휴대폰 광고를 보고 많이 놀라기도 했다. 아직 우리나라 휴대폰이 흑백이던 시절에 일본은 칼라 휴대폰을 쓰고 있었다. 심지어 휴대폰으로 인터넷도 약소하지만 가능해서, 잡지 광고에 이미 QR코드도 쓰고 있었다. 2003년에 알고지내던 일본인 친구가 무려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휴대폰을 갖고 있어서 신기해하던 기억도 난다.

근데 거기까지였다. 이후로 한국은 무서운 속도로 디지털화가 진행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한국이 일본보다 인터넷 속도도 빠르고 디지털화도 더 진행되긴 했었다. 홈페이지도 한국쪽이 이미지나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많이 써서 화려했다. 일본은 주로 텍스트 중심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한국은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며 점점 일본이 모든 면에서 그렇게까지 앞서 나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지금도 일본쪽은 홈페이지 인터페이스 면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고딩이었던 내게 일본은 막연히 동경하고, 언젠가 가보고 싶었던, 선진국이었다. 2010년대 들어서 일본에 살면서도 좋았던 점은 많았다. 한국보다 일본이 살기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디지털화는 좀 느려도 꾸준함이 있고, 사람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최근 1, 2년사이에 참 많이도 깨져간다. 좋았던 것들마저 이젠 다르게 보인다. 요즘 한국 10대들은 일본에 대한 동경심같은 게 없다고 들었다. 반면에 요즘 직접 만나는 일본 10대들(특히 여성)은 한국에 대해 이상한 동경심 같은 걸 갖고 있더라. 그런 학생들 볼 때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느낀다.

2020/08/04 02:31

한국 오타쿠의 세대론에 대해서... 생각 나눔


위 이현석 님의 글이 뭔가 애매하게 끊긴 느낌이 들었다. 살짝(?) 개인적인 생각을 보태본다. 한국 오타쿠 세대론에 대해서...
현석 님이 써놓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한국의 1세대 오타쿠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본다. 연령대는 1970년을 전후로 태어난. 즉 소위 86세대보다 조금 어린 세대다. 여러모로 일본 오타쿠 1세대랑 겹친다. 참고로 일본 1세대 오타쿠는 1960년을 전후로 태어나 1980년대에 20대를 겪었다.
비슷한 점 첫번째는 그 바로 윗세대가 학생운동을 격하게 겪은 정치의 세대였다는 것이다. 일본의 1세대 오타쿠는 각자가 겪던 서클(이때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만을 전문으로하는 동아리는 드물고 SF소설 동아리 등으로 파편화된 시절) 선배들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면이 있었다. 요즘 식으로 하면 꼰대에 대한 저항의식이랄까. 뭔가 그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뉴미디어를 즐기는 세대였다. 그들은 정치의 시대와는 한발짝 떨어진 시점에서 대중문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세대다. 이는 한국의 상황과도 어느정도 일치한다. 참고로 지브리를 이끌던 미야자키 하야오나 스즈키 토시오는 당연히 이들보다 윗세대고, 정치적인 의식도 강했다.
두번째는 위와 이어지는 이야기이긴 한데 전후 풍요를 마음껏 누린 첫번째 세대라는 점이다. 이현석 님의 글에도 나오는 나카모리 아키오도 스스로 인싸인 척 한다. 그러나 사실 이 당시 인싸와 오타쿠가 큰 차이는 없었다. 이른바 "신인류"라는 담론에 속하는 세대다. 그들은 정치와 사상 등 거대 공유 담론에서 벗어나 각자가 자신의 개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한국의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대표적인 1970년대 전후생이 누구겠는가?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등요"라던 X세대다. 서태지, 신해철, 이현도도 다 여기에 들어간다. 그 봉준호도 이 세대에 속한다. 풍요롭게 외국 팝/영화 덕질을 했다. 우리도 저런 작품들을 만들어보자며 실제 만들어 본 세대다. 한국의 1세대 오타쿠들도 일본대중문화가 금지되어 있던 시절에도 적극적으로 일본의 것을 찾아 즐겼다. 우리도 이런 걸 만들어보자고 했다. 1990년대 아이큐 점프, 소년 챔프를 통해 데뷔했던 만화가들도 딱 이세대. 먹고살기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표현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대중예술을 하기 시작한 세대다.
셋째는 버블의 풍요를 마음껏 즐겼던 세대. 일본의 80년대와 한국의 90년대. 이건 딱히 설명이 필요없겠다. 한국도 IMF도지기 전까지는 쭉 성장했다. 취직걱정도 안하던 시절이었으니 뭐.
물론 완전 이 둘을 동일시 할 순 없다. 일본 오타쿠는 잡지와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세력을 넓혔다. 반면 한국은 그와 더불어 PC통신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90년대 초중반까지 PC통신은 소수의 사람들이 쓰던 문명의 이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 개설된 각종 만화 애니메이션 동호회가 활동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특히 한국에서 일본과 관련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PC통신을 통해 일부 본좌급 멤버들(일본의 정보를 직접 얻는 게 가능했던 특별한 분들)이 말하는 걸 진실처럼 믿고 따르던 시절이기도 했다. 한국 1세대 덕후들에게 있어서 일본은 지리적으론 가까웠지만 쉽게 다가가기는 힘든, 저 너머의 이데아 같은 세계였다. 지금보면 완전 저작권 침해로 철컹철컹했을 동영상 CD도 구워서 동호회 사람들끼리 구입해 보곤 했다. 여행 비자를 일일히 발급받아서 어렵사리 일본에 가면 LD를 한가득 사오기도 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 했다. 오프라인 상영회 모임에서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LD를 틀며 구경하던 풍경도 흔했다. 지금도 LD를 대량으로 구입했다가 공항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별짓을 다했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한편으로 막연한 반일감정이 극심했던 때라서 다들 복잡한 심정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소비했던 기억도 난다.
그 다음 세대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생들은 중고딩 시절에 PC통신에 기반한 커뮤니티 경험을 상당부분 공유한다. 다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점 일본 애니메이션을 구하기 쉬워졌다. 급기야 2000년 전후의 초고속망의 발달로 애니메이션을 거의 공짜로 다운받아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 디지털에 대한 위화감에서 오는 세대차이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느낌으로 겪었을 것 같다. 이전세대에 비해 너무 쉽게 작품을 접하기 시작한 세대다. 커뮤니티의 중심축이었던 PC통신은 점점 사라져 갔다. 이 당시 1세대 레전드들은 2004년경에 블로그 서비스인 이글루스로 대거 이동했다. 2세대들 역시 이글루스에 많았지만 어린 세대일 수록 네이버 등 좀 더 대중지향적인(?) 서비스로 분산되었다. 이는 곧 이전과 같은 커뮤니티 보단 각자가 각자의 취향대로 즐기는 문화로 더욱 확산된다. 기실 오타쿠만의 문제라기 보단 사회 전반의 미디어환경에 변화에 따른 거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모에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DC의 파편화된 놀이 문화가 오타쿠 커뮤니티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온다. 이글루스도 시간이 지나며 더 젊은 유저가 나타났다. 이들은 이전 세대들과는 다른 방식의 소통방식(주로 DC에서 유래한)을 막무가내로 요구하여 PC통신시절의 예의범절을 기억하던 초기 유저들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지금은 1세대 덕후들도 하나둘 결혼하거나 커뮤니티에 좀 더 가까운 블로그 서비스인 이글루스에서 떠나가 일부 흔적만 남아있다.
솔직히 1990년대 생은 잘 모르겠다. 이건 내가 겪은 게 아니라 조사를 해봐야.
그냥 생각나는대로 주저리 떠들어 봤다. 이상.

2020/07/31 02:01

프랜차이즈화된 일본영화, 시네마의 종말 영화 나눔



일본 상업 영화 전반이 코스프레 영화가 되었다. 아니면 그저 그런 고만고만한 특정 관객(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혹은 속성에 대한 팬덤)을 노린 프렌차이즈 영화가 되어버럈다. 이것은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시작한 미디어믹스 전략이 할리우드나 한국보다 먼저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 일찍부터 발달해 버린 탓이 아닌가 한다.

본래부터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였다. 하지만 업계내부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예술의 영역까지 올라갔다.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업작품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영화에 "작가성"이 담보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작가성이란 누벨바그 어쩌고 나오는 예술영화의 작가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특정 작품을 딱 보면 누가 연출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것, 즉 감독 "개인"이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어떤 특정 감독의 작품들의 일정한 통일성이 있기 때문에 감독론으로서 비평할 수 있다.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화된 영화는 감독 개인을 지운다. 링크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글에도 나오듯이 "개인은 리스크"다. MCU에 온갖 유명한 감독이 참가하더라도 프랜차이즈의 통일성이 저하될 일은 없다. 마블은 그 점에서 철저하게 감독 개인을 지우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DC는 실패했다. DCU의 슈퍼맨 시리즈는 감독 잭 스나이더의 색깔이 확 드러난다. 지금까지의 DC 영화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DC가 무리해서 MCU가 되려 하다 망했다. 이후 아예 컨트롤을 포기하자 <조커> 같은 작품이 나온다. 그 결과 <조커>는 충분히 '시네마'로서 기능하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일본 영화는 특히 <춤추는 대수사선>이후로 점점 프랜차이즈로서 소비되는 영화가 주류가 되어 갔다. 영화는 드라마가 만든 프랜차이즈의 일부가 되었다. 제작위원회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감독이 있긴 했다. 그러나 권한은 줄었다. 그건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라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판권도 가지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뭐 그걸 고려해도 코스프레 영화가 되는 건 제작진 능력 부족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블 영화들에도 영화(시네마)의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계시’ 라든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감정적인 충격 이런 것은 있지 않습니다. 어떤 도전, 리스크라 할 만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들어있지 않아요. 그 영화들은 시장의 어떤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획되어 제작되는 상품입니다. 여러 가지 테마로 변주할 수 있도록 설계되죠.
속편이라 이야기되지만, 그 본질은 자가복제라 봐도 무방합니다. 세계관의 모든 것은 충돌하는 법이 없도록 공식적인 절차를 따라 관리되죠. 이것이 현대의 영화 프랜차이즈의 본질입니다. – 시장 조사, 사전 모니터 테스트, 분석, 수정, 재분석, 재수정, 반복,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출시."

"오늘날 제작되는 많은 영화는 즉각적인 소비를 위해 완벽한 공정으로 제조되는 상품과도 같습니다. 재능을 가진 이들이 팀을 이루고, 이 과업을 훌륭히 해내죠. 하지만 이런 모든 영화에는 영화예술에 있어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습니다. 바로 어떤 아티스트 개인의 (개성과 예술성이 담긴) 통일된 비전이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무엇보다 개인은 그 자체로 리스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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